업무사례
합의된 관계라던 주장을 무너뜨리고 징역 7년을 이끈 피해자 대리 사례
가해자가 모든 행위를 합의에 따른 것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한 사건입니다. 피해자 대리인으로서 세 갈래의 변명을 하나씩 반박하였고, 법원은 징역 7년을 선고하였습니다.
Ⅰ. 사건의 개요
강창효 변호사가 성폭력 피해자인 의뢰인을 대리하여 형사재판에 참여한 사건입니다.
가해자는 교제하던 의뢰인을 상대로 여러 차례 강간과 유사강간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의뢰인의 성적 영상을 텔레그램 채널에 퍼뜨린 혐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착취물을 만들어 배포한 혐의도 함께 받았습니다.
법정에서 가해자는 두 사람이 애초에 가학적인 성관계를 전제로 만난 사이였고, 문제 된 행위도 모두 서로 동의한 것이었다며 공소사실 전부를 부인하였습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형량을 논하기에 앞서 유죄 판단부터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Ⅱ. 사건 쟁점
사건의 성패는 ‘서로 동의한 행위’라는 가해자의 방어 논리를 깨뜨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가해자의 변명은 세 갈래였습니다. 첫째, 강간이 아니라 합의된 가학적 성관계였다는 것입니다. 둘째, 유사강간은 없었고 의뢰인이 공황 증세로 집을 나갔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촬영과 유포 모두 의뢰인이 동의하거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라도 받아들여지면 해당 혐의가 무너지는 구조였습니다.
적용 법조의 법정형도 무겁습니다. 강간죄(형법 제297조)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촬영물 반포(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제2항)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 아동·청소년성착취물 제작(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 제1항)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입니다. 그러나 동의가 있었다는 주장이 인정되면 이처럼 무거운 조항도 적용될 여지가 사라집니다.
형사재판에서 피해자는 원칙적으로 증인의 자리에 섭니다. 공소를 유지하는 검사는 국가를 대표할 뿐 피해자 개인을 대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피해자의 시각으로 사건을 재구성하고 유리한 자료와 논리를 재판부에 따로 전하는 일은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의 몫이 됩니다. 가해자가 합의를 내세우는 사건에서 이 작업이 빠지면 재판부가 가해자의 설명에 끌려갈 위험이 있습니다.
Ⅲ. 강창효 변호사의 조력
강창효 변호사는 엄벌을 탄원하는 의견서를 작성하여, 세 가지 주장마다 반박 근거를 붙여 재판부에 제출하였습니다.
1) ‘합의된 가학적 관계’라는 주장
문제 된 네 차례의 강간은 모두 미리 합의한 것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되었습니다. 가해자 본인도 법정에서, 각 범행 당시 의뢰인이 화가 난 상태였다고 시인하였습니다. 분노한 상대에게 동의 절차 없이 밀어붙인 성관계를 합의에 따른 행위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점을 이 진술의 모순으로 부각하였습니다. 가해자는 의뢰인이 통증을 호소하면 곧바로 멈췄다고 했으나, 촬영 영상에는 의뢰인이 뚜렷이 거절하는데도 가해자가 아랑곳하지 않고 행위를 이어가는 장면이 남아 있었습니다.
법적으로 보면, 가학적 성향을 전제로 만난 사이라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하려면 당사자 사이에 ‘양해’가 있어야 합니다. 권투 경기에서 상대를 가격해도 폭행죄가 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두 선수가 그 위험을 서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에는 그 양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관계라면 흔히 약속된 한마디로 즉시 모든 행위를 중단하기로 정해 두는데, 두 사람 사이에는 그런 장치가 전혀 없었습니다. 원하지 않는 순간에 상황을 멈출 수단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재판부 역시 이 논리를 받아들여, 가학적 관계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성관계의 피해를 덮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2) ‘공황 상태로 집을 나갔다’는 주장
이 주장을 뒤집은 것은 건물 CCTV였습니다. 범행 직후 의뢰인은 옷매무새도 갖추지 못한 채 황급히 집을 나와 계단으로 한 층을 올라가 건물 구석에 숨었습니다. 휴대전화와 지갑은 물론 신발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공황 증세 때문이었다면 건물 밖 트인 공간으로 나가 숨을 고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의뢰인은 반대로 건물 안쪽에 몸을 감추었는데, 이는 누군가를 피해 달아난 사람의 모습입니다. 몇 분 뒤 가해자가 나와 의뢰인을 찾아다녔고, 결국 찾아내 집 안으로 데려갔습니다.
강창효 변호사는 이 장면들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제출하였고, 재판부는 의뢰인이 진술한 대로 강제적인 성적 행위에 놀라 도망친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3) ‘촬영과 유포에 동의했다’는 주장
의뢰인은 교제 초기에 혼자만 보겠다는 가해자의 말을 믿고 일부 촬영에 응했을 뿐, 강간이 벌어지는 동안의 촬영에는 동의한 적이 없다고 처음부터 같은 취지로 진술하였습니다. 실제로 일부 영상에서는 가해자가 촬영에 응하면 헤어져 주겠다며 이별을 조건으로 촬영을 요구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성관계 자체를 거부하던 사람이 촬영에는 동의했다는 가해자의 설명은 그 자체로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이 점을 정리해 제출한 결과, 재판부는 촬영과 유포 모두 의뢰인의 동의 없이 이루어졌다고 인정하였습니다.
Ⅳ. 결과
법원은 가해자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하였습니다. 아동·청소년 관련기관과 장애인 관련기관에 대한 각 3년의 취업제한, 형 집행 종료 후 5년간의 보호관찰,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도 함께 명하였습니다.
양해가 없었다는 점, CCTV에 남은 도주 장면, 촬영에 동의했다는 주장의 자기모순, 의뢰인이 겪어 온 고통이 의견서를 통해 재판부에 전달되었고, 이 내용은 판결 이유 곳곳에 그대로 녹아들었습니다.
양형 이유를 보면, 재판부는 가해자가 연인이던 의뢰인의 흔들리는 정신 상태를 자기 욕구를 채우는 도구로 삼았고, 잔인한 방식으로 인격을 짓밟아 정신건강을 심하게 무너뜨렸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범행을 전부 부인하는 태도로 보아 진지한 반성을 찾기 어렵다는 점도 불리한 사정으로 들었습니다.
증거가 분명하거나 사실관계가 단순한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따로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성이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처럼 가해자의 논리에 따라 피해 사실 자체가 부정될 수 있다면, 피해자 진술을 보강하고 객관적 자료로 정황을 정리해 그 논리를 법리적으로 무너뜨리는 대리인의 역할이 결과를 가를 수 있습니다.